중산리~천황봉~성삼재(2007년 7월 29~31일)
첫째 날,
일기예보가 신경이 쓰인다.
흐리고 한때 비라고 했기에 혹시나 싶다.
일행이라도 있으면 조금 덜하겠지만 혼자다. 그것도 야간산행이기에..
작년부터 계획하던 일인지라, 지금 아니면 영원히 계획으로 끝날 것 같아 휴가 시작 첫날, 일을 내지르기로 했다. 야간산행이라곤 작년 가을, 산악회따라 지리산 천황봉이 다다. 약간은 무모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이제 어쩌랴? 혼자서 심야버스를 타고 원지에 내렸다. 새벽 2시..
다른 일행들이 있어 약간은 위안은 되었지만 확인결과 코스가 다르다.
택시를 타고 중산리로 향했다.
다행히 산악회에서 온 산군들이 몇이 보였다.
하지만 쑥스러움에 겁을 무릅쓰고 천황봉을 향한다. 3시 반..
로타리 산장에 이르러 부자로 보이는 한 팀이 보인다.
산장부근 샘터에서 물을 채워 다시 오른다.
별은 뛰엄뛰엄 보이지만 맑은 하늘은 아니다.
오른지 약 3시간..
드디어 천황봉 정상이다.
천황봉 정상은 안개로 뒤덮여 앞이 잘 보이질 않는다. 하늘은 푸른데..
졸립다.
어서 장터목으로 가서 아침겸 잠시 쉬어야 겠다.
졸린눈을 비비면서 장터목에 다달았다.
이른 아침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바람이 심하다.
바람을 벗삼아 라면과 햇반으로 아침을 때웠다.
산장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세석산장으로 향한다.
저기 세석평전이 눈에 들어온다. 그 밑에 나무색 세석산장이 보인다.
마침 중학생들이 단체로 극기훈련을 왔나보다.
선생님이랑 학생들의 신경전이 가득하다.
어린 체격에 1900여미터되는 지리산을 오르는게 어찌 쉬운일이랴..
벌써 시간은 12시를 가르키고 어느새 산행을 시작한 지, 8시간 반이 지났다.
다리가 저려오고 온 몸으로 피로가 밀려온다.
내가 산행을 한 지, 이렇게 긴 시간을 걸어본 적이 얼마만인가?
세석산장엔 많은 산 꾼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오늘 마지막 행선지인 벽소령으로 향한다.
선비샘이 다가오자 왼쪽무릎에 통증이 밀려온다. 무릎 보호대라도 있음 조금 나을텐데, 다리를 좀체 움직일 수 없다.
벽소령까지는 약 1시간 정도,
어차피 오늘 일정이 벽소령이기에 무리를 말아야 겠다는 생각에 선비샘에서 30분정도 다리를 풀었다.
하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일단은 벽소령까지만 가자.
한 쪽 다리에만 의지한 채, 겨우겨우 벽소령에 도달했다. 1시간 정도의 거리가 1시간 반 정도 걸렸다.
어차피 벽소령에선 예약을 못했기에 여기서 비박을 해야한다.
벽소령대피소 입구 한쪽 어귀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눈을 떠 하늘의 별을 보며 지리산의 밤을 보낸다.
둘째 날,
부스럭 소리에 잠을 깬다.
한여름임에도 으스스 한기를 느낀다.
아직도 주변은 깜깜한데, 산꾼들이 새벽출정을 나선다.
시계를 보니 5시
얼른 침낭이랑 짐들을 꾸려 새벽 찬 공기를 벗삼아 벽소령을 출발한다.
어제 무릎이상으로 산행이 힘들었는데, 아직도 무릎이 정상이 아니다.
거의 절름발이 신세.
속으로 아직 갈 길이 먼데,
예정도착시간은 2시경,
그럼 앞으로 9시간정도를 더 가야한다.
하지만 막상 걷기 시작하니 아직은 걸을 만 하다.
주변은 밝아오고, 여기 저기서 비박하는 산군들이 보인다.
어느새 연하천대피소,
모두들 아침 식사하느라 분주하다.
무엇보다 물이 풍부해서 좋다.
여기저기 산악회회원들이 보인다.
새벽 2시경 성삼재를 출발했단다.
당일로 중산리를 내려갈 계획이란다.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간단히 라면이랑 햇반으로 아침을 때우고 다시 삼도봉으로 출발..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삼도가 만나는 곳.
서서히 피로가 몰려온다.
무릎도 다시 힘들어지고..
뱀사골 대피소 삼거리를 지나 저만치 노고단이 흐릿하게 눈에 들어온다.
보이지 않던 끝이 보인다.
조금만 더가면..조금만 더가면..
손에 금방 잡힐 듯한 노고단이 다가가면 멀어지고, 다가가면 멀어지고,
힘이 빠진다. 분명히 저곳이 노고단인데, 이상하게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한참을 돌았다.
드디어 노고단 입구,
하지만..
노고단은 저 옆에 따로 두지 않았는가?
헉! 다리에 힘이 빠진다.
노고단을 보호하기 위하여 둘러가는 길을 새로 만들었다.
노고단 정상까지 20여분을 더가야 한다.
해는 뜨거운데..
가야하나? 가야하나?
대간꾼들로 보이는 꾼들은 그냥 지나간다.
아마도 대간길에는 벗어나 있나보다..
잠시 들러기로 했다.
오르는 길이 너무 힘들다.
더구나 왼쪽다리가 자유롭지 못한 것이 더욱 힘에 부친다.
성삼재에서 올라온 관광객들이 노고단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야단이다.
살며시 약이 오른다.
저렇게 쉽게 올라와 기분은 다내고..
드디어 노고단이다.
어제 중산리를 새벽 3시반에 출발한 지, 하루하고도 9시간만에 노고단에 도착했다.
드디어 나도 지리산 종주를 해냈다.
산을 알고 싶어하는 자는 한 번씩 해보고 싶어하는 지리산 종주..
드디어 해내었다..
모든 피로가 한꺼번에 날아가버린 듯 하다.
해보지않은 자는 어떻게 지금의 내 기분을 알 수 있으랴?
인파속을 헤치며 성삼재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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